본문 바로가기

좋은 글

강의24) 삶과 일, 한쪽으로만 치우치면 문제가 발생한다.

생계를 꾸려 가는 일, 삶을 가꾸는 일 모두 중요하다.

한 생애를 살아간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지금처럼 사람과의 연결이 쉬운 시대에서는 더욱더 그렇다. 예전에는 나와 내 가까운 이웃, 친척들 정도만 신경을 썼다. 에너지의 분산이 적었다.  지금은 어디에 살고 있는지도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도 모르는 누군가와 꾸준히 연결된 세상에서 나도 모르게 에너지가 샌다. 

 

한 나라의 문화적인 관습은 생각보다 우리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 어떤 문화를 가진 나라에서 태어나느냐에 따라 우리 삶의 질이 많이 달라진다. 내가 태어난 한국이라는 나라도 유교적인 색체와 문화가 많이 있다. 사람은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무언의 규칙도 많다. 그래서 거기에서 벗어난 삶을 살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일반적인 사람들의 삶은 이렇다. 중.고등학교 때 열심히 공부만 해서 좋은 대학가고 좋은 대학 가서 좋은 곳에 취업하고 좋은 곳에 취업해서 결혼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지만 그들이 특별한 사람들이다. 이 삶의 과정에서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것도  좋아해서 선택한 것도 들어 있지 않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어쩔 수 없다고 이해할 수 있다. 내가 보모를 선택할 수 없듯이 나라도 복불복이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 알기에 받아들이려고 하면 받아들일 수 있다. 

 

그 다음부터의 삶이 중요하다. 대학까지는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직장인이 돼서 사회에서 역할을 하다보면 생기는 또 다른 마음이 있다. 내 존재 이유같은 것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이를 등한시하면 어느날 갑자기 공허함 마음이 들 때가 생긴다.

생계를 꾸려 가는 일도 무시할 수 없다. 현재와 같이 무한 경쟁시대에서 남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를 이곳에 집중해야 하는 것도 맞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시기에 따라 생계를 꾸려 가는 일과 삶을 가꾸는 일의 비중을 조절하는 기술이다. 시기에 따라 어느 한쪽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집중해야 할 때가 있다. 요즘 사람들은 사회 초년생일때부터 일과 삶에 균형을 잡으려고 한다. 하지만 우주와 자연과 사람은 균형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한쪽으로 치우친 느낌이 들어야 균형을 맞추기 위해 다른 한쪽으로 향한다. 또 거기에 오래 머물다보면 다른 한 쪽이 소홀해진다. 시소와 같다. 시소의 균형을 맞추려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운데에 앉아 있든지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직장생활 3년 정도 됐을 때다. 여러가지로 나와 맞지도 않고 더 공부하고 싶은 마음에 회사에 사직서를 내 적이 있다. 영어를 좋아했고 더 늦기 전에 외국에 나가서 영어 공부를 하고 싶었다. 나갈 돈이 모아지니까 그런 생각이 더 강해져서 내린 일이다. 결론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비행기를 타기로 한 날짜에 나는 결혼을 했고 내 사직서는 부장님께 다시 돌려 받았다. 

그리고 일 년 후에 IMF가 터졌다. 그때도 취소하길 잘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도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누구는 그때 가지 뭐가 급하다고 결혼을 했니? 하고 안타까워하시는 분도 계시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그래도 그때 가지 않고  결혼해서 아이들 낳고 살아서 지금처럼 안정된 삶을 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더 크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에게는 그렇다. 결혼을 하면서부터는 내 삶에 내가 들어가지 못했다. 이것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결혼을 한 사람들은 모두 공감할 것이다. 아이들이 어느정도 성장할 때까지는 부모가 해줘야 하는 것들이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때는 생계를 꾸려 가는 일에 집중해야 할 시기다. 이 삶 또한 내 삶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이쪽이 무너져도 삶이 힘들다. 이또한 지나간다는 말처럼 아이들에게 손이 덜 가는 시간이 온다.  이때부터는 삶을 가꾸는 일의 비중을 조금씩 늘려 나가야 한다. 사람이란 나이가 들수록 해봤던 것만 하려 하고 해보지 않은 것은 안 하려는 습성이 있다. 이를 위해서라도 조금씩 해보려는 노력을 삶에 들여야 한다. 그래야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다. 나도 그랬다. 다른 사람들보다 자유로운 직업이라서 그럴 수도 있었다. 지금은 아이들이 다 20살이 넘어서 나의 도움이 그렇게 필요하지 않다. 가끔 도움을 주고 싶어서 이야기하면 "됐다"고 한다. 그럼 나도 마음 속으로만 같은 말을 한다. "나도 됐다'고. 이렇게 말할 수 있는 힘도 그동안 내가 나를 가꾸는 일도 생계를 꾸리는 일과 함께 조금씩 키워나왔기 때문에 가능했다. 

 

나의 첫 강의 수업도 이 내용이었다. 그리고 참석자 두 분도 여기에 목마름이 있으셔서 오신 분들이시다. 

사람마다 '생계를 꾸리는 일'과 '삶을 가꾸는 일'의 시기와 비중이 다 다르다.  어디에 더 집중할 것인가도 각자의 상황에 맞게 각자가 정할 일이다. 그럼에도 이 두 개의 수레바퀴는 항상 같이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