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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강의39)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뇌의 비밀

생각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냥 일어나는 일이다.

우리는 우리의 의지가 생각을 만들어 낸다고 믿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생각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냥  나에게 일어나는 일이다. 내 의지에 따라 생각을 하고 안 하고가 아니라 그냥 생각이 올라오고 생각이 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의지로 생각을 일으킬 수도 없고 멈출 수도 없다. 내 생각이지만 내 의도대로 다스릴 수 없다. 내 의지대로 통제할 수 있을 거라는 착각으로 인해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생각이 가지 못했을 때 우리는 매번 자신에게 실망을 하고 좌절한다.  

 

뇌과학에서 얘기하는 생각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이렇다.  감각을 통해 들어온 정보가 뇌에 전달되기도 전에 무의식적으로 우리 몸이 먼저 많이 사용해서 익숙한 감정을 내부기관을 통해 신호를 보낸다. 그러고 나서 감각을 통해 들어온 정보에 우리 몸이 먼저 느낌과 동시에 무의식 안에 있는 많은 경험과 기억 중에서  그 감정과 맥락이 유사한  것을 찾아 그 위에 덮어 씌운다. 예를 들면 이렇다.  돈이 없어 밥을 해결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도둑질을 한 사건이 뉴스에 소개된다.  이런 상황이 마음이 아픈 사람은 무의식 안에 이런 상황에 대해 안쓰러운 감정이 있는 것이다.  무의식 안에 이러한 상황이  '안쓰럽다'라고 내재되어 있으면 그 비슷한 상황이 일어나면 거의 자동적으로 '안쓰럽다' '가엾다'는 마음이 저절로 올라온다. 감정이 이러하면 생각도 그 감정에 맞게 올라올 수밖에 없다. '안쓰럽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진짜 나쁜 사람이네, 당연히 벌을 받아야겠네."라는 생각을 의식해서 하려고 해도 잘 되지 않는다. 뇌 안에 이미 신경망이  깔려 있어서 깔린 감정 그대로 해석하고 해석한 대로 감정을 느낄 뿐이다.  또 같은 상황을 다르게 해석하는 사람은 이렇다.  상황이 어찌 됐든 잘못한 것은 잘못한 거니까 당연히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같은 원리다. 그 사람의 무의식에 이미 이러한 상황에 대한 생각과 감정이 저장되어 있기 때문에 다르게 생각하려고 해도 이미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 생각도 움직이기 때문에 사실 쉽지 않다. 우리가 의식해서 생각을 만드는 게 아니라 몸에서 먼저 감정이 일어나고 그 감정에 합당한 생각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떠오르는 것이 우리 몸이 움직이는 방식이다. 이것이 몸이 의식을 집어삼켜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하는 원리다.

 

생각을 만드는 두 번째는 자의식의 일관성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실제 일어나는 사실을 보고도 우리는 우리의 무의식에 있는 자신의 신념과 믿음, 가치관에 맞게 사실을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생각하는 경향이 아주 강하다. 우리는 이를 '자기 합리화'라 한다. 우리 뇌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스토리의 일관성을 매우 중요시한다. 우리가 경험하고 기억하는 모든 것은 뇌가 일관성 있는 이야기로 만들어 무의식 안에 저장한 것이다. 이 이야기들이 일맥상통하게 연결되어 있어야 우리의 정체정에 일관성이 주어진다. 뇌는 우리 자아의 일관성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정체성에 일관성이 없다는 것은 내가 누구인지 모른다는 의미고 이것은 내 생존이 의미가 없음을 말한다. 살아 있어도 살아 있다고 할 수 없는 상태다. 인간은 자신의 행동이나 생각이 그를지라도 합리화를 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우리 뇌가 가진 생존 방식이고 자아를 인식하는 방식이다.

 

삶에서 일어나는 많은 사건도 사건 그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살면서 누구에게나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흔한 경우다. 일어난 사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몸이 그 사건에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었느냐에 따라 의식에 있는 생각도 달라진다.  부부나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문제부터 큰 문제까지 모든 것이 다 그렇다. 부부 사이에 흔히 발생하는 다툼 중에 하나인, 양말 문제도 그렇다. 아내는 뒤집어 놓은 양말을 보는 순간 남편이 괘씸하다. 괘씸하니 괘씸한 감정에 맞는 생각이 올라오고 말도 그렇게 나간다. 말이 예쁘게 나갈 수 없다. 한번 생긴 감정은 의지로 누른다고 눌러지는 것도 아니고 없앤다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한번 안 좋은 생각이 들면 다른 생각이나 감정은 가질 수 없다.  남편도 같다. 이유가 어찌 됐든 매번 똑같은 걸로 잔소리하는 아내가 우선은 밉고 싫다. 그러니 남편 입에서도 좋은 소리가 나가지 않는다. 이 같은 상황에서는 감정과 생각이 같이 움직여서 어떻게 해도 상황이 좋아질 수 없다. 일어난 감정이 해소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 같은 상황이 반복되면 기다린다고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비슷한 상황에서 똑같은 감정으로 무한 반복하다 보면 우리 뇌 안에서는 그에 해당하는 신경망이 형성되고 그에 맞는 화학물질이 반복적으로 분비된다. 이를 다르게 표현하면 화를 자주 내면 화가 날 때 만들어지는 화학물질에 몸이 무의식적으로 반응을 하고 몸이 무의식이 되면 감정과 생각까지 몸과 같이 움직인다. 화를 내야 살 수 있는 몸이 되는 것이다. 남편이 좋은 일을 해도 곱게 봐주지 못하고 항상 삐툴게 보는 습관이 생긴다. 습관이 되면 남편이 하는 모든 일이 마땅찬게 된다. 여기서 빠져나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상대방보다 더 크게 생각하는 것이다. 이 상황을 다른 감정으로 받으면 이렇다.  " 어제, 오늘 일도 아닌데,  잔소리하지 말자."  기분 안 좋은 티 안 내고 그냥 내 남편이니까 하는 마음으로 한다. 미운 감정으로 하면 그 감정 또한 남편에게 전달된다. 남편 입장에서는 그냥 무덤덤하게 지나갈 수도 있고  어느 날 문뜩 아내가 고맙게 느껴질 수도 있다. 젊었을 때 이런 감정을 미처 갖지 못한 남자라도 적어도 나이가 들어서는 아내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가질 가능성이 크다. 어찌 됐든 싸우지 않고 평화롭게 지나갈 수도 있는 일이다. 조금 더 크게 생각하면 내 남편이니까 기분 좋게 할 수도 있는 일이다.

 

현실적으로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더 크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자신의 유전적 성향을 넘어 스스로를 진화시키는 일이고 자신의 내적 성장을 위한 일이다. 아이들에게도 좋은 환경적 유전자를 넘겨주는 일이기도 하다. 삶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사소한 일들에  애를 쓰려는 노력이 의미 있는 삶의 이유가 되어줄 수 있다.  타인을 위한 작은 배려가 삶을 살아갈 힘을 주기도 한다.  우리가 살면서 한 모든 경험은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시도 때도 없이 잡념으로 우리를 찾아온다. 나이가 드니 잡념이 더 많아짐을 느낀다. 이러한 쓸데없는 생각 때문에 잠을 설치거나 일을 하는데 방해가 되는 경우도 많다. 어찌 보면 이 또한 우리가 한 모든 행동에서 비롯된 것인데도 불구하고 생각을 내 힘으로 잠재울 수 없음에 힘듦을 느낀다. 지금은 이러한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많이 노력한다. 50대 중반 언저리에 있으니 확실히 자기 사고가 더욱 굳어지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우리 집도 그렇다. 남편은 나이가 들수록 젊었을 때보다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에 많이 몰두하고 우긴다. 한번 우기면 방법이 없다. 살지 않는 한 책으로 다스린 내가 더 크게 생각하는 것밖에 없다. 실패할 때도 있지만 이러한 생각을 갖지 않고 생활할 때보다는 성공률이 확실히 높다. 그리고 여기에서 오는 우월감도 있다. 다른 사람보다 조금만 더 크게 생각하면 확실히 싸울 일이 많이 줄어든다. 싸울 일이나 신경 쓸 일이 줄어드니 감정도 편해지고 잡념도 줄어듬을 느낀다. 가끔은 나도 남편에게 확 저지르고 싶은 감정도 생기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남편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다. 화를 내봤자 상대방보다 나에게 더 큰 안 좋은 상처들이 남기 때문에 안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이렇게 노력하다 보니 확실히 다른 사람보다 더 크게 생각하고 있는 나를 보게 된다. 지금은 이러한 나의 행동들이 나에게 다시 에너지를 주는 힘이 된다.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가 현실에서 갖는 의미란 결국 각자가 각자의 경험에서 얻은 믿음과 생각대로 사건에 어떻게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유동적인 것이지 고정 불변적인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어떤 생각과 어떤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나에게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