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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강의4)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감정은 몸이 경험을 기억하는 방식이다.

어느 순간부터 느낌, 감정이라는 말을 많이 생각하고 사용하고 있는 나를 보곤 한다. 내 마음에, 내 의식에, 내 뇌에 '감정'이라는 단어가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느낌이다. 내 생각과 행동을 이끌고 내 삶의 모든 것에 관여하는 것이 감정이라는 것을 알고 난 다음부터는 더욱 감정에 집중하는 편이다. 이 또한 책에서 얻은 지식을 내 삶에 들이는 과정이라 생각하고 하는 행동이고 습관이다.  

 

책을 접하면서  오랫동안 가졌던 궁금증이 하나 있었다.  지금은 이해를 했지만 그 당시에는 "이게 정말 말이 돼?   

어떻게? 설마"라고 말했을 정도로 믿지 않았던 내용이다. '만 년 전 원시인의 뇌와 지금 현 인류의 뇌가 거의 같다.'

뇌과학 책을 읽다 보면 많은 곳에서 이 문장을 만나게 된다. 처음에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좀 지나치게 과장법을 써서 표현했겠지 싶었다. 여러 권의 관련 책을 읽으면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다른 책에 나와 있는 지식으로 채워 넣고 연결을 하다 보니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지금은 이 말을 전혀 의심 없이 아니 절대적인 진실로 받아들인다. 이 진실로 인해 내 삶의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만 년 전 원시인의 뇌와 지금 우리 뇌 부위 중 거의 진화가 일어나지 않고 같은 상태인 부분이 '편도체'다. 다른 말로 '변연계'라고도 한다. 편도체는 몸에서 일어난 감정을 빠르게 알아채서 감정에 색깔의 이름을 붙이는 곳이다.  어떤 자극이 오면 뇌가 이성적으로 반응하기 전에 몸이 먼저 무의적으로 반응한다. 쉽게 설명하면 이렇다. 우리가 현재 느끼는 감정은 현재 상황을 감각이 지각해서 보내온 정보라기보다는 과거 경험의 기억이 감정으로 저장된 것을 꺼내서 사용하는 것일 가능성이 아주 많다. 우리가 숨을 쉬거나 심장이 뛰는 것이 우리의 의지가 아니라 자율신경계가 자동적으로 처리하는 것처럼 감정도 그러하다. 우리가 느끼고 싶은 감정이나 원하는 감정을 우리 마음대로 꺼내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몸이 과거의 기억을 되살려 몸에 저장된 감정을 자동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아쉽게도 우리의 감정은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이고 안 좋은 것을 더 잘 기억하는 습관이 있다. 이는 생존에 좋은 감정보다 안 좋은 감정이 더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매일 반복해서 똑같은 생각을 하고 똑같은 느낌만 재생산하면 우리 몸은 그 감정에 익숙해지고 편안해진다. 이러한 몸 상태가 되면 의식이 감각을 통해 들어온 정보를 처리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익숙하고 각인된 감정을 몸을 통해 뇌로 신호를 보낸다. 이걸 편도체가 파악해서 그 감정에 어울리는 이름을 붙이는 것이다. 이러한 상태가 되면 의식은 더 이상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 대신 의식의 자리를 몸이 느끼는 감정이 차지하고 우리의 의식적인 생각도 몸의 느낌대로 따라가게 돼 있다. 몸과 느낌과 감정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두려움이라는 감정도 뇌가 아니라 몸에서 먼저 시작된다. 두려운 감정이 오면 심장이나 맥박이 빨리 뛴다. 기타 내장들의 미묘한 움직임도 있다. 이를 편도체가 알아차려서 그에 맞는 이름을 붙이고 뇌의 전두엽은 두려움에 맞는  생각을 하게 하고 행동까지 두려움에 걸맞은 행동을 하게 이끈다. 이렇게 되면 의식이 아무리 긍정적이고 좋은 생각을 해도 몸은 과거의 감정에 사로 잡혀 있는 상태다. 의식과 몸이 일치하지 않는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는 의식은 힘이 없다. 몸은 과거에 느꼈던 느낌 대로 과거에 했던 행동으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이 과정을 무한 반복하며 살고 있는 것이 무의식적인 삶이고 우리의 현실이다. 여기에서 빠져나오려면 우리의 의식을 키워야 한다. 몸이 자동적으로 반응하는 느낌보다 더 큰 느낌과 더 큰 생각을 만들어야 한다. 

 

말로 오간 대화는 없지만 느낌으로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내 감정이 나의 의식보다 먼저 알아차린 경우다. 8년 전의 일인 것 같다. 그날이 내가 그분을 마지막으로 본 날이다. 헤어질 때 본 마지막 뒷모습이 지금도 가슴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게 마지막일 거라고는 나도 그분도 알지 못했다. 익숙하지 않은 느낌이었기에 알지 못했다.  마지막 뒷모습이 애잔했다는 느낌이 지금도 선명하게 내 무의식 어딘가에 있다. 그때 내 의식이 먼저 그걸 알아차렸더라면, 그 느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눈치챘더라면, 항상 아쉬운 감정이 나를 맴돈다. 우리의 내면세계는 우리 자신에게도 미지의 영역이다. 아쉽게도 인간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감정뿐만 아니라 타인의 감정과 그 발생 이유를 알아차릴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나지 못했다. 

 

원시인의 뇌와 현재 우리의 뇌가 완전히 같기만 한 걸까? 그렇지 않다. 가장 큰 차이점은 이마엽이라 불리는 전전두엽피질에 있다. 원시인과 지금 우리와의  차이점은 깊은 사고를 할 수 있는지에 관한 것이다. 즉 사고를 할 수 있냐 없냐의 차이인데 이 역할을 하는 곳이 전전두엽피질이다. 우리는 과거의 어떤 유인원보다 전전두엽피질이 굉장히 두텁게 발달한 생명체다. 이러한 획기적인 전전두엽피질의 진화와 인간의 협업 활동이 지금 현 인류의 발전을 이끌었다. 

 

이러한 큰 차이에도 불구하고 현대인의 뇌와 원시인의 뇌가 왜, 같다고 하는 걸까? 그 이유는 우리의 삶을 이끌어가는 것은 의식이 아니라 편도체에서 만든 '감정'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은 의식의 협업이었지만 내 삶을 이끄는 것은 의식이 아니라 몸과 하나가 된 감정이다. 매일매일 겪는 여러 기억과 경험은 몸의 느낌으로 기억되고 이 느낌이 경험의 감정이 되어 우리 몸에 새겨지고 이것이 우리 삶과 나의 정체성을 만든다. 결국 우리는 현실에서 벌어지는 사실도 내 몸의 감정 상태와 같은 것만을 선택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더욱 공고히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삶을 바꾸기 위해서는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현재의 감정 상태나 생각의 사고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지금 현재 느끼고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크게 느끼고 더 크게 생각해야 한다. 현재 느끼는 감정 상태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낄 수 있어야 하고 지금 가지고 있는 생각이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져야 한다. 그래야 이 무의식적 몸의 느낌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삶의 변화를 바라기 전에 가져야 할 태도다. 

 

몸에 밴 감정은 우리의 생각과 행동, 우리 삶의 모든 것을 지배한다. 올라온 감정을 덮고 무시한다고 해서 저절로 사라지지도  해소되지도 않는다. 감정은 무시하거나 억누르면 오히려 더 강해진다. 무의식 어딘가에 차곡차곡 쌓일 뿐이다. 우리는 익숙하지 않은 감정에 대해서 무시하는 경향이 많다.  자주 사용하는 감정은 당연시하는 습성도 있다. 감정은 우리도 모르게 눈 깜짝할 사이에 처음 가졌던 본래의 색을 바꿔서 익숙한 감정 하나만을 남기고 사라진다. 감정은 하나만 올라오지 않는다. 그 상황과 관련이 없는 감정뿐만 아니라 내가 자주 사용한 감정들이  서로 얼키설키해 있다. 처음 올라온 진짜 감정을 찾기 위해서는 내가 처음에 가졌던  생각이나 의도가 무엇인지 찾아야 한다. 진짜 감정을 찾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그 감정 안에 내가 하고 싶었던 생각이나 행동, 말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진짜 감정을 알면 적어도 후회할 행동과 말은 줄일 수 있다. 인간관계에서 우리가 감정을 표현할 때는 '그것을 통해 내가 얻고 싶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