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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강의42) 감정과 이성 사이

"감정 빼고 이성적으로 생각하자."는 것은 인간에게 불가능하다. 

우리는 감정이라는 개념을 어떤 상황에 대해 우리의 뇌가 감각 기관을 통해 들어온 정보를 바탕으로 해석하고 판단해서 내린 느낌이라고 알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 감정에 맞는 생각과 행동을 하고 그 생각과 행동이 옳았다고 우리 스스로를 합리화하면서 살고 있다.

 

감정도 무의식의 영역이다. 우리가 의식하기도 전에 몸이 무의식적으로 먼저 반응하고 이를 뇌가 의식해서 만든 것이 감정이다. 언어가 생각의 도구인 것처럼, 무의식 안에 있는 감정이 몸 안에 있는 내장이나 심장, 기타 장기들의 움직임을 이끌어 낸 것이 감정이다. 우리의 뇌가 이렇게 일어난 감정에 생각의 도구인 언어로 정의한 것이 우리가 느끼는 최종 감정이 된다.  이렇게 진화한 이유를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해석하면 이렇다.  뇌가 의식해서 반응하는 속도보다 몸이 의식해서 반응하는 속도가 훨씬 빨라서 우리 생존에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밤에 혼자 길을 걷는데 시야에는 아무 위험한 요소가 보이지 않지만 몸이 뭔가를 느껴 두려움이나 불안한 감정이 먼저 올라오는 것과 같다. 이렇듯 감정은 우리가 보고 듣지 못하는 것을 매 순간 몸이 끊임없이 느끼면서 우리 생존에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감정은 우리가 의식하지 않아도 매 순간 일어나고 끊임없이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컨트롤한다.  

 

강한 감정과 연결된 기억은 잘 잊히지 않는다. 특히 어렸을 때 생긴 특정한 감정은 무의식에 저장되어 어른이 된 후에도 나의 생각과 행동에 많은 영향을 준다.  부부간의 싸움도 결국은 감정 싸움이다. 시작은 보잘것없는 사소한 문제였지만 감정으로까지 확대되면 돌이킬 수 없는 감정을 상대방에게 꽂는 결과를 남긴다.  감정은 하나의 감정만 일어나지 않는다. 여러 감정이 나오지만 나에게 꽂히는 감정은 긍정적인 감정보다 부정적인 감정에 더 집중하게 되고 여기에 휘둘리는 것이 우리 인간이다. 감정의 색깔은 다양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자주 사용하고 느껴 본 감정만 사용할 수 있고 느낄 수 있다. "시랑 한다"는 표현을 못 받고 자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말을 하기 어려운 것과 같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다. 기분이 좋으면 '간'도 빼줄 것처럼 하지만 기분이 나쁘면 뒷감당이 안 될 정도로 행동한다. 기분에 따라 일상 생활의 기복이 크다는 것은  감정이 삶을 지배한 것이다. 감정이 지배한 삶은 언제라도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 감정에 삶이 휘둘리지 않으려면 느낀 그대로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좋다. 표현할 대상이 어려운 사람이거나 힘든 경우에는 편하고 믿을 만한 사람에게 하는 것도 좋지만 자주 이러면 듣는 사람도 힘들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글로 쓰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된다. 글로 표현하면 자신이 느낀 감정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고 그 과정을 통해 조금이나마 감정이 누그러지고 흐려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안 좋은 감정을 가까운 사람에게 쏟아내는 행동은 감정을 가장 안 좋게 배출하는 방법이다. 이는 뒷일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을 만들고  더 많은 안 좋은 감정들과 마주할 수밖에 없다. 감정 소모 또한 자기 자신과 싸우는 가장 안 좋은 행동 중에 하나다. 정신적으로 자신과 싸우는 데 많은 에너지가 들어가면 다른 곳으로 방향을 돌리려고 해도 이미 에너지가 소진된 상태라 어찌할 도리가 없다. 상황만 나빠지고 자신만 더 괴로워진다. 감정은 양날의 검과 같다. 인간의 생존을 위해서는 감정이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감정에 휘둘리기만 한다면 삶이 고통스러워진다. 

 

우리가 감정을 다루는 데 익숙하지 않은 이유는 감정에 대한 오류와 감정을 다루는 방법에 대해 무지해서다. 지금 나에게 일어난 감정이 사실과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올라온 감정이 상황에 적합한 감정인지 아니면 몸에서 저절로 올라온 익숙한 감정인지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한다. 무의식에서 올라온 내 주관적인 감정, 생각이라면 남을 탓하기보다 그냥 받아들이고 지나가게 내버려 둬야 한다. 이때는 어떠한 행동도 나에게 유익하지 않다. 한번 올라온 감정은 누른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내가 상처받지 않는 선에서 그냥 흘러가게 내버려 두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이다. 감정을 잘 다루게 되면 내 안에서 솔직함과 자연스러움이 생긴다.  불필요한 감정이나 과잉된 감정에서도 자유로워질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느끼는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않는다. 느낀 감정을 사실대로 꺼내놓지 못하면 감정은 순환되지 않는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모든 오해는 감정이 순환되지 않아서 똑같은 상황을 다른 감정으로 느끼는 데 있다. 주고 받는 말도 겉돈다. 말은 입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우리 마음 안에 있는 감정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한번 생긴 감정은 표현을 안 한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어떤 식으로든 어떤 상황에서든 터질 수 있는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 감정을 잘 다스리면 타인과의 소통도 잘 이루어진다. 우리는 언어로만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내 몸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것, 표정, 몸짓, 분위기, 감정으로 소통하며 사는 존재다. 

 

우리는 감정의 개입 없이는 그 어떠한 이성적 결정도 내릴 수 없다. 우리가 내리는 모든 결정의 판단 기준은 감정이다. 그 감정 뒤에 이성이 합리화시키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인간은 일단 느끼고 그 다음에 생각하는 존재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감정이라는 것을 배재해야 한다고 배웠다. 감정을 빼고 우리는 그 어떠한 이성적인 결정도 내릴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