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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강의7) 내 안에 또 다른 내가 있다면...

여러분은 자아가 몇 개인가요?

'자아'란 무엇인가?

예전에는 철학에서 많이 이야기를 했다면 요즘은 심리학이나 뇌과학 등에서 많이 언급되는 단어다. 

자아란, '나'라고 생각이 되는 관념 같은 것이다. 

 

얼마전에 지인과 전화 통화를 하고 끊었는데 우리 아이가 이런 얘기를 한다. 

"엄마는 이중 성격이야. 우리랑 얘기할 때와 전화할 때 엄마 목소리가 아주 많이 다른 거 알아?"

"응, 알아. 그거 당연한 거 아니야. 가족끼리 그러는 거 아니지~" 그렇게 웃어 넘겼다.

상냥하게 전화 받는 나와 가족에게 투박하게 얘기하는 나는 동일 인물이다.

 

뇌과학이나 심리학 이론에 따르면 학문에 따라 불리는 명칭은 다르지만 자아가 셋이라고 본다. 

심리학과 뇌과학에서 정의하는 자아의 개념은 조금 다르다. 여기에서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아로 설명하는 것이

삶을 이해하는 데 훨씬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그 방향에서 얘기하려고 한다. 

심리학에서는 진짜 자아, 이성적 자아, 사회적 자아로 분류한다. 진짜 자아는 본질의 나로 생각하면 된다. 

이성적 자아는 내가 꿈꾸고 되고 싶어 하는 자아다.  좋아하는 사람한테 잘보이고 싶은 마음, 내가 되고자 하는 꿈을 위해

노력하는 자아다. 사회적 자아는 인간관계를 맺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다른 모습을 한 자아다. 

사회생활을 하는 데 있어 어쩔 수 없이 따르는 모든 것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우리는 일상과 다른 나의 모습을 이중적이라거나 내숭이라고 말하지만 이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사회성의 표현이다. 

단 방법이 잘못되었다. 성숙하지 못한 방법으로 나를 보였을 뿐이다. 

본질의 자아를 감추고 완전히 다른 나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맞게 진실된 나의 모습을 보여 주면 된다. 

지금 그대로의 진짜 모습, 불완전한 모습 그대로 세상에 보여 주려고 노력할 때 진정한 내 삶을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나의 자아는 그럼 몇 개나 될까? 

자아가 셋이라는 책의 내용을 보면서 나의 자아도 셋일거라 생각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나의 자아는 좀 다른 것 같다. 

셋이지만 이 셋이 따로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교집합처럼 자아 셋이 겹쳐 있어서 거의 하나의 자아처럼 느껴진다. 

 

이 글을 쓰면서 갑자기 든 생각이다.

셋의 자아가 따로 떨어져 있는 것과 교집합처럼 붙어 있는 자아의  장.단점이 무엇인지 비교해 보고 싶어졌다.

자아가 따로 떨어져 있을 때의 장점 - 카멜레온처럼 환경과 분위기에 따라 나를 바꿀 수 있어서  사회생활을 잘 할 가능성이 크다. 사교성이 좋아서 인맥이 넓다. 환경에 적응을 잘한다. 

교집합처럼 붙어 있는 사람은 이것이 단점으로 작용한다. 

자아가 따로 떨어져 있을 때의 단점 - 주체적으로 사는 삶의 힘을 받기 어렵다. 문뜩 문뜩 삶이 쓸쓸하고 공허해진다. 

가끔 무기력감도 느낄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삶이 허무하고 무상하다. 우울감까지 올 수 있다.

교집합처럼 붙어 있는 사람은 이것이 장점으로 작용한다. 

 

선택은 내가 하면 된다. 

 

돌이켜보면 내 삶도 쉽지 않았다.

교집합의 자아를 가지고 산다는 것은 생존에 큰 문제가 생길 가능성도 많고 실제로도 그랬으니까 말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사회적 관계가 수평적인 조직문화가 아니고 수직적인 조직 문화에서는 특히 그렇다.

나도 내 자아가 교집합처럼 붙어 있다는 사실을 안 지 얼마 안 됐다. 

사회생활을 하는데 내 성격이 방해가 될 거라고는 전혀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 생활이 나와는 안 맞는다는 생각은 많았다. 지금도 이 생각은 같다. 

예전에는 왜 안 맞는지 몰랐다면 지금은 그 이유를 안다. 

나의 이러한 자아로 인해 삶이 어렵고 힘들었지만 딱 거기까지 였다.  내가 충분히 감당할 만큼이였다.  

바꾸고 싶지 않다. 그리고 내가 만들어 놓은 삶과 만들어 갈 삶이 좋고 기대된다.

 

우리를 무너뜨리는 가장 무서운 적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것에 재능이 있는지 알지 못하며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알지 못할 때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삶에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다.  우리는 우리의 감정이 불편하다고 느끼지 않는 한, 내 삶이 힘들지 않는 한, 

내 안에 있는 깊은 믿음이 틀릴 수도 있다고 믿지 않는 한 자신에 관해서 돌아볼 시간을 갖지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삶이 너무 힘들어서 바꾸려 하기보다는 뭔가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 때문에 힘들어한다. 

이 공허함은 나이가 들수록 더욱 짙어진다. 

이 공허함을 채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나를 찾는 것'이다. 

본질의 자아를 찾아서 잘 다듬고 만들어서 그 위에 이상적 자아와 사회적 자아가 뛰어놀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고 의미 있는 일은 자기 자신을 자기 의지대로 만드는 일이다. 

주어진 환경을 넘어 자신도 미처 깨닫지 못한 내재된 잠재력을 찾아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자신의 삶을 가꾸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고 원하는 것들로 내 삶을 채우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 노력이 나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로 작용한다. 

이러한 긍정적인 에너지는 다시  좀 더 나답고 의미 있게 살아갈 용기를 제공한다. 삶은 이렇게  선순환을 일으키며 내가 원하는 삶에 조금씩 조금씩 다가가는 것이고 이것이 의미 있는 삶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