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성 없는 인사는 타인에게 불쾌한 감정만 준다.
인간은 이성이 아닌 감정에 따라 움직인다. 나도 그렇고 타인도 그렇다. 이 대전제를 생각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은 타인과의 관계의 질에서 결정적인 한방이 될 수 있다. 꾸준히 강조해도 또 강조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감정'에 관해서다.
감정은 1차적으로 감각을 통해 들어온 정보를 가지고 무의식 안에 내재된 감정과 내부기관, 특히 장내 세균의 분포도 등 다양한 영향을 받아 감정이 만들어진다. 속이 허할 때나 헛헛할 때는 좋은 감정이 올라오지 않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좋은 감정을 갖기 위해서는 우선 장이 편해야 한다. 이렇게 올라온 감정은 상황에 맞는 생각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 만들어진 환경에 맞는 생각을 일으킨다. 감정이 만들어진 환경 또한 사람마다 다르기에 똑같은 상황을 접해도 각자가 다르게 생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감정 이입도 어떤 대상이나 상황에 대해 몸이 느끼는 것을 말한다. 중요한 것은 인간 관계에서 오가는 말보다 몸이 느껴서 우리에게 말하는 감정의 영향력이 대단히 강하다는 데 있다. 말은 잊혀질 수 있으나 감정은 지워지지 않는다. 한번 생긴 감정은 해소하지 않는 한 우리 몸 속 어딘가에 남아서 꾸준히 우리를 괴롭힌다. 자신의 의지로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더욱 아니다. 그냥 무의식 아래 덮어 놓고 있다가 어느 순간에 불쑥 올라오기를 반복하며 그렇게 나와 같이 사는 것이 한번 형성된 감정이다. 나의 감정을 잘 다스리는 게 중요한 이유도 타인에게 한번 잘못 휘두른 감정은 지울 수도 없앨 수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만 그렇지 않을 거라는 믿음으로 감정의 상처를 받아도 다른 부부들처럼 우리 부부도 그냥 산다. 부부간에 주고 받은 안 좋은 감정이 사라져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우리나라 결혼 문화의 탓도 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하고 대처도 잘하지만 기성 세대인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가끔 황혼 이혼을 하시는 분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정도다. 불쑥 불쑥 오래 전에 받았던 안 좋은 감정들이 올라와 지금도 우리의 관계를 어색하게 할 때도 있지만 딱 거기까지다. 어떻게 풀고 해소해야 하는 지를 모르는 우리는 서로의 삶이 다할 때까지 안고 가야할 운명이다. 사람은 죽을 때 변한다고 누군가 말한 것처럼, 죽기 전 삶이 다하는 날이 돼서야 "미안했다. 고맙고 사랑한다." 이 한마디를 남기고 홀연 사라지는 관계가 부부인 것 같다. 삶이 야속하기 그지 없고 인간의 미련함에 할 말이 없어지는 상황을 누구나 맞는다. 이러한 상서롭지 못한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감정을 잘 다스려 후회할 일을 줄이는 것이는 것이 최선이다.
칭찬은 내가 받을 수도 있고 할 수도 있다. 내가 나를 칭찬할 수도 있다. 누구나 칭찬을 받고 느낀 감정도 있고 칭찬을 하고 받은 느낌도 있다. 이 둘의 느낌이 항상 같지는 않다. 사람 관계에서 어쩔 수 없이 주고 받아야 하는 '빈말' 처럼 '칭찬'도 그렇게 생각해서 말하는 경우가 많다. 빈말은 객관적인 기준이 없는 말로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 하지만 '칭찬'은 다르다. 우리는 모두 자신이 스스로에게 정해 놓은 기준이 있다. 그 기준에 맞는 칭찬을 받아야 거기에서 에너지도 받을 수 있고 상대방도 진정성을 느낄 수 있다. 칭찬을 받고도 찜찜하다면 그건 나와 맞지 않아서다. 칭찬을 하고도 상대방의 표정이 찜찜한 표정이라면 내가 한 칭찬이 겉돈 칭찬인 것이다. 내가 나에게 하는 칭찬도 마찬가지다. 근거도 없이 희망적인 말로만 하는 칭찬은 나의 성장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람이 성장하는 데 칭찬 만큼 큰 힘이 되는 것도 없지만 진정한 칭찬의 힘을 받기 위해서는 상대방이나 스스로가 정해 놓은 기준을 잘 알고 거기에 맞는 진실된 표현을 담아 전달하는 습관을 들일 필요가 있다.
누군가에게 축하를 해줄 때도 마찬가지다. 남이 잘되는 것은 진화론적으로 인간 개개인에게는 생존에 위협이 생겼다는 말과 같다. 다른 사람이 성취하고 얻은 결과물이 꼭 내가 가져야만 했던 것으로 보이는 착각이 작용해서다. 내 가까운 사촌이 땅을 사면 당연히 배가 아픈 것이 본능이다. 이러한 무의식적인 본능을 이길 방법은 단 하나다. 잘못된 믿음임을 깨닫고 온 마음을 다해 축하해 주려는 노력이다. 노력하면 이것도 극복할 수 있다. 나도 그랬다. 지금은 내 떡이 아님을 확실히 안다. 이 감정을 느끼고 난 다음부터는 시기나 질투의 감정이 들지 않는다. 이러한 감정이 들기까지 노력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이 잘되는 것보다 내가 아는 사람이 잘되는 것이 낫다고 스스로 위안하면서 그렇게 했다. 말로만 축하하지 않고 온 몸을 다해 축하해 주었다. 설령 그것이 처음에는 가식적일지라도 꾸준히 온 몸으로 축하를 해주려고 했다. 지금은 말과 함께 몸이 알아서 반응한다. 내가 의식하지 않아도 그렇다. 이게 습관의 힘임을 또 한번 느낀다.
'좋은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의34) 뇌 작동 방식을 알면 사람을 이해할 수 있다. (0) | 2024.03.24 |
---|---|
강의33) '을'일지라도 '을'처럼 살지 말자. (0) | 2024.03.24 |
강의31) 자신이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찾자. (0) | 2024.03.23 |
강의30) 다독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독이다. (1) | 2024.03.21 |
강의29) 말은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전달되는 것이다. (0) | 2024.03.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