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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강의54) 가치관, 신념, 관념, 믿음, 모두가 내 생각일 뿐이다.

내가 믿고 있는 내 생각이 나를 가둔다.

가치관이란 내 삶의 방향을 제시해 주는 나침판 같은 역할을 하는 생각이다. 우리가 뭔가를 결정할 때나 판단을 내려야 할 때 혹은 선택을 해야 할 때 기준이 되는 생각이다. 가치관이 없으면 삶에 일관성도 없고 자기 삶을 살지만 다른 사람의 기준대로 살게 된다. 그만큼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가치관의 있고 없고는 삶의 질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여기서 우리가 또 생각해 봐야 할 게 있다. 가치관, 즉 내가 믿고 따르는 생각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가치관은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바꿀 수 있고 바뀌어야 하는 생각이지 고정된 의식이 아니다. 가치관이 없는 것도 삶이 어렵겠지만 가치관이 너무 강하게 박혀 있어도 삶에 문제가 생긴다. 이 세상에 꼭 하나의 법칙만 일관되어 적용되는 경우는 없다. 사람에 따라서 환경에 따라서 시대에 따라서 얼마든지 유연하게 바꾸고 바뀔 수 있는 것이 가치관이고 우리의 생각임을 알아야 한다. 신념이나 관념도 마찬가지다. 신념은 어떤 사상이나 생각을 굳게 믿는 마음이고 관념은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관한 나의 생각이다. 가치관, 신념, 관념 이 모든 믿음과 생각들은 세상을 보는 나의 주관적인 눈일 뿐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러한 나의 믿음이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고 느끼며 살고 있다. 하물며 이 주관적인 믿음으로 타인을 평가하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유연성이 없고 잘못된 믿음이 위험한 이유는 또 있다. 우연히 내가 믿고 있는 생각과 일치된 경험을 하게 되면 이 경험은 강한 느낌으로 우리 몸에 새겨진다. 무의식에 저장되는 것이다. 무엇을 하든 이 믿음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판단하려고 한다. 더 이상 다른 생각이 들어올 수 없다. 스스로가 자신을 가두는 셈이다. 우리가 믿는 모든 것은 우리의 생각이 된다. 우리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느냐는 삶의 질을 결정하는데도 아주 큰 영향을 준다. 우리가 가진 생각이 행동을 만들고 그 행동이 결과적으로 경험으로 기억되고 그 경험된 기억이 최종적으로 느낌으로 우리 몸과 무의식에 저장되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생각과 행동, 하물며 감정까지도 95% 정도는 무의식적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나의 가치관, 신념, 관념 이 모든 믿음에서 유연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새로운 생각을 들여야 한다. '그럴수도 있다.'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몇십 년을 굳게 믿어온 믿음에 다른 생각을 넣는 것은 사실 쉽지 않다. 왜냐하면 그것이 진실이고 사실이라고 믿고 살아온 내 안의 '자아'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누군가가 우리의 믿음에 대해 훈계를 하거나 충고를 하면 반감만 더 심해지고 기존의 믿음을 더 강하게 지키려는 아집만 생긴다. 부부싸움도 이러한 각자의 믿음 때문에 서로의 믿음이 맞다고 우기면서 끝도 없는 평행선을 달리는 어리석은 행동의 하나다. 여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은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 있다.  '내가 믿는 믿음 말고 다른 생각도 있을 수 있구나, 그럴 수도 있구나.'하고 스스로가 느껴야 생각도 바뀌고 유연해진다. 스스로 느끼기 위해서는 많은 경험을 해봐야 한다. 가장 좋은 것은 직접 오감을 통해 경험하는 여행이지만 현대인들에게 이 또한 쉬지 않다.  다양한 사람들을 많나고 다양한 경험을 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듣는 것도 좋지만 우리의 생활 반경이나 방식을 생각하면 이것도 어렵다.  다른 생각을 들이는 데 있어 가장 손쉽고 편하게 감정의 동요 없이 할 수 있는 것이 독서다. 독서를 통해 지식을 넣는 것이 다른 생각을 넣는 가장 최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한 때는 내가 가진 생각이 모두 옳고 맞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 때문에 피해갈 수도 있는 많은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지금도 여기에서 자유로운 상태는 아니다. 의식적으로 생각은 하지만 몸과 느낌이 따라주지 않는다. 생각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아야 한다고 믿고 있지만 내 현실적인 삶에서는 그렇게 하는 게 나에게는 쉽지 않다. 아주 오랫동안 내 삶만 바라보고 와서 그런지 다른 사람들의 삶이나 기분 같은 것을 이해하는 것도 어렵고 공감하는 것도 많이 떨어짐을 느낀다. '내가 알면 모든 사람들이 안다'라고 할 정도로 분위기나 사실 파악도 느리다. 이건 내 마음속에 이런 믿음이 있어서다. '굳이 나와 상관도 없는 일까지 알아야 할 필요가 없다. 내 삶에 집중하기도 바쁘다.  쓸데없는 데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자.'라는 생각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좋을 수도 있지만 더불어 사는 삶에서 생각하면 이기적인 행동일 수 있다. 또 바꾸고 싶은 나의 믿음 중에 하나는 '나는 어떠한 이유나 세세한 설명 모두를 다 변명이나 필요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해해 주려고 생각하면 이해해 줄 수 있는 변명도 있다는 걸 안다. 때에 따라서는 자세한 설명을 해줘야 할 때도 있다는 것도 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변명은 그러려니 하고 받아주려는 노력도 한다. 하지만 나 자신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오해가 생겼을 때는 서로가 이해해 줄 수 있는 이유나 변명이라도 말해야 하는데 하지 않아서 관계가 틀어지거나 어색해지는 경우가 많다. 좀 더 좋은 관계로 이어갈 수 있었는데 나의 이러한 생각 때문에 놓친 관계도 있다.  이 글에도 나의 이런 성격이 드러나 있는 걸 느낀다. 글 안에 들어있는 개인적인 일들도  상황에 따라서는 자세하게 설명을 해야 독자들이 이해하기 쉬울 텐데 이런 세세한 설명 자체를 안 좋게 생각하는 마음 때문에 너무 요점 정리하듯 쓴다는 걸 나도 느낀다. 

 

나에게도 다른 사람들 만큼이나 많은 믿음과 생각이 굳게 자리잡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독서를 내 삶에 들인 것이다. 독서를 하기 전의 나였다면 누군가가 나에게 "그건 아니지, 네가 말한 것은 틀렸어, 다시 생각해 봐."라고 했다면 나도 내 믿음을 더 강하게 지키면서 상대방을 똑같이 공격했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독서를 하면서 내 믿음이 옳을 수 있듯이 상대방 믿음도 옳을 수 있고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고 상대방 생각이 맞을 수도 있다는 걸 안다.  지금은 누군가가 나에게 "그건 아니지"라고 말하면 "그래, 아닐 수도 있어, 이건 그냥 내 생각이야. 내 생각을 말한 거야." 하고 심플하게 말해줄 수 있다.